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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라이 쿠로코 & 미사카 미코토
Writter. 서담
01.
시라이 쿠로코가 이상해졌다.
그리고 그것은 미사카 미코토의 일상이 크게 변했다는 말과 같았다.
02.
“어떻게 달라졌는데요?”
사텐은 달그락거리며 얼음이 잔뜩 담긴 음료수 잔을 빨대로 휘젓는다. 얼음과 유리잔이 부딪쳐 맑은 소리를 내고, 그 옆에서는 은 식기와 유리잔이 부딪치는 소리가 들렸다. 우이하루는 홀쭉한 파르페 컵 위로 잔뜩 쌓인 디저트를 보고 행복하다는 듯이 작은 스푼으로 파르페의 위쪽을 푹 펐다.
다 마신 오렌지 주스의 얼음을 아작아작 씹고 있던 미코토가 퍼뜩 고개를 들어 사텐을 바라본다. 갑작스러운 들이댐에 당황한 모양인지 사텐이 몸을 바로 하고, 미코토는 그 반응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하나둘씩 말을 내뱉었다.
“호칭도 그렇고, 들이대질 않아.”
“에? 그런 거라면, 미사카 씨에게 좋은 거 아닌가요?”
좋은 거? 좋은 거긴 했다. 하지만 너무 갑작스러운 게 문제일 뿐이지. 미사카 미코토의 일상은 대부분의 영역이 시라이 쿠로코로 이루어져 있었으니까.
4시면 끝나는 토키와다이에서의 생활은 대부분이 혼자였고, 그 이외의 시간은 대부분이 쿠로코와 함께였다. 주로 쿠로코가 재잘재잘 말을 걸고, 그에 미코토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을 잇는 식으로. 때때로 리액션이 과한 쿠로코가 “언니──!”하고 울부짖으며 미코토를 껴안았고, 미코토가 그 행동에 질려서 약한 전류를 흘려 쿠로코를 떼어놓고. 기숙사에서 자율 시간에 각자의 책상에 앉아 과제를 한다거나, 혹은 공부하는 척 쪽지를 주고받으며 킬킬댄다든가.
“아하~.”
“응?”
사텐은 보란 듯이 음흉하게 웃으며 한 손으로 입가를 가렸다. “미사카 씨, 그건 꼭 시라이 씨가 그런 행동을 다시 해주기를 바라는 사람 같아요.” 우이하루가 곁에서 스푼을 우물거리며 말한다. 사텐이 맞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끄덕거리며 우이하루의 어깨를 가볍게 흔들었다.
“아냐.”
“아니긴 뭐가 아니에요~, 미사카 씨.”
사텐은 마치 친구의 치부를 본 사람 마냥 음흉하게 웃는다. 마치 저걸 어떻게 써먹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이. 미코토는 팔뚝에 오소소 올라온 닭살을 손으로 쓸어내려 없애며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진짜 아니라는 것을 깨달은 모양인지 사텐이 어리둥절한 낯을 한다.
“그게 아니라, 쿠로코가 날 피하는 것 같아서. 뭔가 잘못했나, 싶어서.”
“미사카 씨가요? 시라이 씨께?”
사텐이 묻고, 우이하루가 우물거린다. 미코토가 고개를 끄덕이기가 무섭게, 우이하루가 답했다.
“미사카 씨가 잘못한 것은 없을 거예요. 문제가 있다면 시라이 씨께 있는 거일 거고요.”
“그게 무슨 말이야? 우이하루 씨.”
벌써 파르페를 반절 넘게 먹은 우이하루가 우물우물 파르페를 씹어대다가 이내 어깨를 으쓱이며 웃었다. 정말로 별거 아니라는 듯이, 이게 정답인게 확실하다는 듯이.
“그야, 시라이 씨가 이제 미사카 씨에 대한 감정을 정리하려는 거 아니겠어요.”
03.
“쿠로코.”
“무슨 일이셔요, 언니?”
쿠로코는 정말 아무렇지 않은 듯이 미코토를 돌아본다. 항상 웃는 얼굴이었던 것과는 다르게, 쿠로코의 얼굴 위로는 아무런 표정도 떠오르지 않은 채였다. 미코토는 그것이 못내 억울해서 입술을 꾹 깨물다가 이내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
“아니야, 아무것도.”
“…네에.”
평소라면 무슨 일이냐고 캐묻거나 말할 때까지 뚫어져라 쳐다봤을 쿠로코는, 이제는 흥미 없다는 듯이 고개를 돌려 책상 위에 놓인 종이 더미를 바라본다. 미코토는 문득 저 종이 더미를 번갯불로 노릇노릇하게 구워서 어떤 것이라도 좋으니 쿠로코의 반응을 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가, 이내 고이 접어 넣었다.
‘나에 대한 감정?’ 미코토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그렇게 물었을 때, 우이하루는 또다시 파르페를 우물거리며 눈을 동그랗게 떴다. 옆에 있던 사텐도 마찬가지로 믿을 수 없다는 듯이 눈을 동그랗게 뜨면서, ‘시라이 씨, 미사카 씨를 엄청나게 좋아하잖아요.’ 그리 말했다. 그런데도 잘 모르겠다는 듯이 고개를 기울이는 미코토를 향해 우이하루는 말한다. ‘아무리 친구 사이라고는 하더라도, 시라이 씨가 미사카 씨를 더 좋아하니까요. 지친 거겠죠,’
“나 먼저 잘게.”
“안녕히 주무세요, 언니.”
대답은 기계적으로 돌아온다. 간절기용 이불을 덮는 소리와 사각거리며 펜을 움직이는 소리가 방을 낮게 울린다.
미코토는 문득 단전 아래부터 설움이 느물느물 기어오르는 것을 느꼈다. 아무리 힘들다고는 해도, 한 마디라도 해줬으면 좋았을 텐데. 이런 식으로 갑자기 멀어지는 방식이 아니라. 설움? 설움보다는 정확히는 서운함이 몸을 느리게 침잠하고, 미코토는 졸음으로 흐려진 시야 너머로 쿠로코가 반듯하게 의자에 앉아있는 모습을 바라보다가 천천히 눈을 감았다.
내일이면 더 익숙해지겠지, 그렇게 생각하면서.
04.
미코토는 몸을 뒤척였다. 눈을 감고 있는 시야 너머로는 검정색과 붉은색이 바쁘게 교차한다. 일어나기 싫다. 미코토는 이불을 끌어올려 얼굴을 가리려다가, 익숙하게 부담스러운 시선에 슬그머니 눈을 떴다.
“언니─! 일어나셨어요! 쿠로코가 언니가 일어나기만을 얼마나 기다렸는지 아셔요!?”
눈앞에 불쑥 나타난 쿠로코는 들뜬 낯으로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난다. 미코토는 멍청한 얼굴로 제 옆자리에 드러누워선 자신을 껴안은 쿠로코의 적갈색 머리칼을 내려다봤다. 어제까지만 해도 흥미 없는 표정으로, 덤덤히 답하던 모습이 거짓말이라는 듯이 쿠로코는 평소와 다를 바 없이 헉헉 숨을 몰아쉬었다.
“너, 너너, 너─ 뭐야!”
“아잉. 누구긴 누구겠어요. 언니를 사랑하는 쿠로코 아니겠어요!”
입꼬리는 꾸물꾸물 올라간다. 상황파악도 하지 못한 주제에, 예전으로 돌아왔다는 안도감이 더 큰 탓인지 미코토는 전처럼 자신의 허리를 끌어안고 꿈틀꿈틀 움직이는 쿠로코를 발로 내칠 생각도 하지 못한 채로 손끝을 떨었다. 생일이라서 놀라게 해주려고 했던 거구나. 뒤늦게 머릿속에 떠오른 생각은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언, 언니? 언니, 우는 거여요?”
“…….”
괘씸하기 그지없지만, 그래도 아무렴 어때.
미코토는 손을 뻗어 쿠로코의 머리칼을 쓰다듬는다. 당황한 낯으로 미코토를 올려다보던 쿠로코가 비죽비죽 웃고, 미코토는 쿠로코의 어깨에 손을 올린다. 파지직, 하고 희푸른 전기가 사방으로 튄다. 순식간에 죽을상이 된 쿠로코가 소리 없이 몸을 비튼다.
일상이다. 미코토는 그것이 못내 기뻐서 입안의 여린 살을 꾹 깨물었다.
“다시는 이런 장난 치지 마!”
또 쿠로코에게 덮쳐질까, 다급하게 침대에서 내려온 미코토가 발을 쿵 굴렀다. 파도가 치듯이 미코토에게서 쿠로코로 옮겨간 전류에 쿠로코가 퍼뜩 몸을 틀어 사라졌다가, 건너편 침대 위로 나타난다. 쿠로코는 미안해 어쩔 줄을 모르는 표정으로 연신 미코토를 살피다가, 이내 우물거리며 말했다.
“죄송해요. 언니께서 이렇게까지 싫어하실 줄은 몰랐어요.”
미코토는 길게 날숨을 내뱉다가, 이내 묻는다.
“다른 할 말은 없어?”
그것이 용서라는 것을 기민하게 눈치챈 쿠로코가 반짝 웃는 얼굴로 손에 들린 작은 상자를 미코토에게 내밀었다.
“생일 축하드려요, 미코토 언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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